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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샘터_2012. 3

2012-03-01 | 2062

 

월간 샘터 2012년 3월호

 

한글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캘리그래퍼 강병인




글씨, 꽃처럼 피어나고 물처럼 흐르다

손으로 글씨 쓰는 사람의 작업실에는 묵향이 가득했다. 시간이 느리게 되감기는 듯한 향기를 품은 이 작업실의 주인 강병인(49세)은 글씨를 예술로 만드는 작업인 캘리그래피를 하는 사람, 캘리그래퍼이다. “먹 가는 시간이 좋았고, 글씨가 좋았던” 열세 살 적부터 그는 언제나 글씨를 썼다. 강병인을 모르는 사람도 소주병에 참한 이슬방울처럼 맺혀 있는 그의 글씨만은 낯익을 것이다. 그는 <샘터>에 연재되는 ‘조선 명문가의 가훈’에 옛사람의 정신이 서린 글씨를 선물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과 인간을 품은 한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강병인의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공책이 빼곡해지도록 낙서만 하던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은 서예반 담당이었고 학교의 꿀통을 책임지는 양봉 담당이기도 했다. “70년대 시골에서 자라서 간식을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서예반에 들어오면 꿀을 준다니까, 그건 진짜 엄청났던 거예요.” 고작해야 초등학생이 글씨를 빼어나게 잘 썼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글씨 쓰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하여 그는 추사 김정희를 만났다. “흔히 추사체라고 말하지만, 추사는 글귀가 무엇인지, 글씨를 누가 읽을 것인지, 누가 글씨를 부탁했는지에 따라 모두 다른 글씨를 썼어요.” 그때 만난 추사는 지금도 강병인의 글씨를 지탱하는 정신이 되었고 철학이 되었다.

강병인의 글씨는 스스로 말을 한다. 세상에 ‘봄’은 하나뿐이지만, 그 봄이 강병인에게 이르면 서로 다른 날씨와 시기와 감정을 속살댄다. 떡잎이 조그마한 고개를 내민 이른 봄이 있고, 봄비를 맞아 낭창낭창 허리를 흔드는 젖은 봄이 있고, 한껏 기지개를 펴며 여린 햇살을 받아들이는 풍요로운 봄이 있다. 강병인이 느끼고 겪은 만큼의 봄이 있다. 추사에게 글씨를 배운 강병인은 그처럼 숱한 감정을 글씨에 담는다. “내가 그 상황에 들어가 취하지 않으면 글씨를 쓸 수 없어요. ‘춤’이라는 글씨를 쓴다면 내 손이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 춤을 추는 내 몸이 글씨를 써야 해요. 예전에 ‘사과 한 알이 떨어졌다. 지구는 부서질 정도로 아팠다’는 이상의 시구를 쓴 적이 있어요. 한 달을 끙끙 앓았던 것 같아요. 고작 사과 한 알이 떨어졌는데 왜 지구가 부서질 정도로 아팠을까, 를 알아야 했고, 어떤 사과가 어디에서 얼마나 되는 무게를 지니고 떨어졌는지도 생각해야 했어요. 옛사람들은 스스로 흥취에 젖어 글씨와 그림을 했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래요. 글씨가 그런 거고요.”

추사에게 빠진 중학생이 어엿한 캘리그래퍼가 될 때까지 가로놓인 기나긴 시간, 거기에는 한글을 향한 집념과 애착이 있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강병인은 소원처럼 서예가가 되지 못했다. 대신 디자인과 광고 일을 했다. 그 일을 하면서도 그는 글씨를 썼고 한자처럼 다채로운 서체로 한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훈민정음은 ‘천지인’,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다는 원리를 따르고 있어요. 하늘과 땅과 사람이 있으니 음양오행을 지닌 거죠. ‘봄’이라는 글씨를 예로 들면, ‘ㅂ’은 꽃이나 잎이 피어나는 모양이 될 수 있고, ‘ㅗ’는 그 꽃이나 잎이 달린 나뭇가지 형상이고, ‘ㅁ’은 그 가지를 지탱하는 뿌리의 형상이에요. 아름답고 과학적이고 자연을 닮은 글씨인 거죠.” 그의 설명을 듣고 다시 글씨를 들여다보면 정말 자연과 우주가 떠오른다. 돌이 경쾌한 ‘ㄹ’ 음을 남기며 땅 위를 구르고, 새가 ‘ㅅ’ 모양으로 날개를 펴며 하늘로 솟구친다.


나의 글씨를 나눌 수 있다면

어렵게 지낸 시절이 길었던 강병인은 그 기억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다. 마침 그가 사는 성산동에 한국우진학교라는 특수학교가 있었다. 아침마다 아이를 휠체어에 태워 등교시키는 부모를 보며 강병인은 글씨를 나눌 수 있다면 그 아이들이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혼자 1년을 고민하며 자료를 수집했고, 서울 마포구와 함께 반 년에 걸쳐 학생을 모집해서 지난 해 졸업 전시회까지 마쳤다. “나눔이라고 하기는 그렇고요, 그냥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재미있었고 학생들도 즐기면서 썼는데… 진짜는 지금부터예요. 일단은 공간이 필요한데 십시일반으로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디자인 회사도 20군데만 결연을 맺어 한 번만 일을 시켜보라고 하면, 그게 벌써 20건이잖아요. 학생들이 그렇게 캘리그래피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 학생 대부분은 기초생활 수급자인데, 수입이 있으면 모든 혜택이 끊긴다. 그것이 강병인이 사회적 기업을 포기하고 결연 형태의 소소한 수입을 계획한 이유다.
글씨를 쓰고 나누는 강병인은 아직도 붓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고 말한다. 탄성이 강하고 제멋대로 휘어지는 붓은 아무리 통제하려 해도 제멋대로 달려나가는 우리의 삶처럼, 다루기 어렵고 가끔 낯설다. 그럼에도 강병인은 날마다 감사하다는 기도를 한다. “붓만 잡으면 괴로운 일도 힘든 일도, 심지어 외로움도 잊을 수 있거든요.” 그 말을 하며 강병인은 그의 글씨를 닮은 웃음을 웃었다.

 

출처/월간 샘터_글 김현정 기자/ 사진 한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