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아 지난 10월 5일
KBS2TV '생방송 오늘'에 방송된 내용입니다.

출처_http://www.kbs.co.kr/2tv/sisa/today/view/vod/1676617_31651.html



[MC]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10월 9일 한글날을 전후로 일주일가량을 한글주간이라고 정해놨는데요,
그래서 어제부터 10일까지 한글주간 기념행사가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 기간을 맞아서 특별한 분을 소개해 주신다구요.

[리포터]
한글을 사랑하며 가꾸고 디자인하는 남자 손글씨작가 강병인씨가
자연속에서 우리 한글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미 가을내음 가득한 남쪽고장 울주에서
자연을 닮아서 더 아름다운 우리 한글의 매력을 여러분도 같이 느껴보시죠.


                                                                                        2010년 9월 30일 [한국패션문화페스티벌]_국립중앙박물관
                                                                                                         패션디자이너 이도이+캘리그래퍼 강병인 작품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예술가,
글씨에 숨결을 불어넣는 사람 캘리그래퍼 강병인.
깊이를 담은 힘있는 글씨들의 주인공인데요,
드라마 타이틀부터 숭례문 가림막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글씨 그 영감을 되새기러 나서는 길
한글을 사랑하는 남자 강병인이 울주로 떠납니다.



곧게 뻗은 대나무밭이 십리에 걸쳐 펼쳐져 있다는 십리대밭
삭막한 도심을 벗어난 여행길에서 제일먼저 만난 자연입니다.

한글에는 삼라만상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자연속에서도 한글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강병인]

  모든 예술이든 디자인이든 또 서예든 캘리그라피든
  그 속에 조형성을 갖추어야 된다라고 하는데요.
  이 대나무를 보면 나뭇가지가 자라는 그런것이
  질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이라는 공간에 들어가면 무질서 해보이지만
  이렇게 질서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 질서 속에 또 중요한 것은 변화거든요.
  그 변화라는것은 글꼴에 있어서 다양한 표정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인데
  오늘 대나무를 보면서 다시한번 그러한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리포터]
그동안 글씨를 써오면서 가장 고민했던건 자연을 닮은 글씨를 쓰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서 그 소망을 땅위에 새겨보는데요,
어느때보다 운치있는 필체가 펼쳐집니다.



울주를 유유히 흐르는 젖줄 태화강 상류에 깍아지른듯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빼어난 절경으로 내노라하는 시인들과 풍류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선바위
오로지 자연만이 빚어낼 수 있는 독특한 질감과
생명의 조화를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듯한 여행길.
태화강 지류를 따라가다 보면 아주 오래전
선사시대 사람들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북의 머리를 닮았다는 바위에
  그림을 새긴 것인데요.
  1960년대에 댐을 만들면서
  그 일부가 물속에 잠겨버렸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문자가 생기기 이전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했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풍어를 기원하는 뜻으로 남긴
  작품입니다.





세종20년 지방의 학자들이 세종을 생각하며 지었다는 정자 자천정.
그 위에서 내려다본 계곡의 풍류는 자연을 닮으려던 옛사람들의 뜻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희노애락은 엇갈리는듯
그러나 실은 더불어 흘러가고 있겠죠.
돌고 돌아서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대한 자연의 흐름처럼
슬픔과 기쁨 고통과 환희가 돌고 돌아서 하나가 될때까지 그 오랜 세월을 살아 숨쉬는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다.





  [강병인]

  여기있는 바위들, 또 숲에 있는 소나무들 변치 않잖아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천년이 지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듯이
  정말 좋은 글씨, 오랜동안 좋은 글씨다 라고
  남길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글씨를 쓰면서 한글의 가치를
  계속 키워나가는 그런 작업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또 그렇게 해야 되고요.










  가을 바람이 실어다준 이 풍부한 감성
  코끝에 밀려드는 이 싱그러운 감촉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전에도 그랬듯이 계절은 또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냄새도 색깔도 감촉도 그대로겠지요.
  심불산 능선을 따라 펼쳐진 억새평원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가장 먼저 아침이 시작되는 해오름의 고장 간절곶에서 맞는 일출은
오늘도 변함없이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는걸 일깨워 줍니다.



여행은 이래서 참 좋은것 같아요.
잊고싶은 것들을 바다에 모두 실어보내고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걸
그동안 얼마나 작은 것들에 얽매여왔던가를 이 넓은 자연이 말없이도 가르쳐주니까요.

이 깨달음을 한동안 잊고싶지 않아서 잠시 넣어두었더 펜을 들었습니다.
그간 꼭꼭 묻어두고 살아왔던 내 안의 나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써 봅니다.
고층빌딩의 복잡한 일상속에서 이 편지를 받아보겠죠.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잊지않고 반겨주면 좋겠습니다.



낡고 오래된 생각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생각, 넓은 생각, 깊이있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길을 가자, 보다 천천히
향기가 살아있는 문자는 자연을 닮은 깊은 인품에서 묻어나는 것일테니까요.




[MC]
네. 드라마 타이틀이며, 숭례문 가림막까지 강병인씨가 쓰셨던 작품이군요.

[리포터]
네, 그렇습니다.
우리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을 저도 해가 갈수록 매년 느끼고 있는데
자연을 닮은 글씨를 쓸수 있다는 것은 매우 멋진 일일 거구요
간절곶 가는 분들 이 우체통에 편지 넣는것 잊지마세요.
아마 일상이 지칠때쯤에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느껴보실 수 있을 겁니다.

[MC]
네. 울주로의 가을여행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