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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전 그리고 나의 캘리그라피 시작점 1 2012.04.02


 


다비전 일러스트레이터 그룹을 위한 캘리그라피_1999년 작업
vision


글씨_강병인, 1999


 


 


다비전 그리고 나의 캘리그라피 시작점 이야기 1


 


많을 다多, vision = 多vision

1997년에 창립된 초창기 출판 일러스트 전문작가들의 모임이다.
1997년 IMF. 운영하던 디자인사는 망?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것이 캘리그라피이다. 1998년 부터 캘리그라피와 캘리그래퍼를 한 참 꿈꾸며 
준비하던 시절에 이 모임의 로고를 캘리그라피로 만들었다.
많을 多자를 새가 날아오르는, 비상하는 형상으로 만들어
이 모임의 영원한 발전을 담았다.

다행히 이 모임은 아직도 유지하고 있어서 홈페이지와 작가들의
전시 도록을 통해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캘리그라피의 시작점은
이야기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때 한글서예를 접하고 시작된 나와 글씨와의 운명,
늘 글씨는 제2의 삶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이너로 일할 때 90년 초부터 일본여행을 하면서
서예가 책타이틀, 광고디자인과 길거리 간판 로고나
식품의 로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는 것을 보았다.

한 때의 유행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보고
한글서예도 일본처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것이 바로 90년 초반부터다.

나는 디자이너로 오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서예만이 아니라 디자인을 접목한다면 새로운 디자인분야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많은 준비를 했다.
서예와 디자인의 접목, 그것은 새로운 실험이자 도전이었다.



98년 그래픽잡지 '프로워크'를 만들어 운영미숙과 자금부족으로 폐간을 하고
다시 2000년 광고대행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시안용으로 붓글씨를 
이용하거나 손글씨를 사용했다.
많은  캘리그라피가 실제로 사용되었다.
2000년 경에 만들어진 롯데칠성


'따져보고 따자!' "따자마자 대축제'


신문광고 손글씨도 내글씨다. 


지금도 못쓰지만 그때는 더 못썼다.

그리고 광고대행사를 그만두면서 시작한 것이
바로 전업작가로서 캘리그래퍼의 길이었다.
당시는 혼자라 생각했고 많이 외로운 길이었다.
물론 많은 준비기간이 필요로 했다.

영묵.강병인


다비전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davision/


 




글씨_강병인, 2000년 작/디자인_애드립커뮤니케이션


 


따져보고 따자,


따자마자 대축제.


광고협회 홈페이지에서 찾은 자료.


오래된 자료인지라 해상도가 많이 떨어진다.


 


디자인_애드립커뮤니케이션